"스트레스를 받으면 코티솔이라는 호르몬이 나와 우리 뇌를 늙고 병들게 합니다."
참 무서운 말이죠.
마치 세상의 모든 소음과 타인의 시선이 내 머릿속으로 직접 들어와 뇌세포를 갉아먹는 듯한 기분마저 듭니다.
매일 아침 눈을 뜨는 순간부터 잠드는 순간까지, 우리는 수많은 관계와 사회적 환경 속에서 크고 작은 스트레스와 마주하며 살아갑니다. 때로는 '나만 빼고 다 괜찮은 걸까?', '왜 세상은 나에게만 이리도 가혹할까?' 하는 생각에 잠 못 이루기도 합니다.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스트레스의 원인처럼 느껴지고, 마음속에서는 자꾸만 남 탓, 세상 탓을 하는 목소리가 커져만 갑니다.
하지만 잠시 숨을 고르고 생각해보면,
결국 그 모든 소리를 듣고 해석하는 주인은 바로 '나 자신'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똑같은 비바람을 맞아도 어떤 나무는 부러지지만, 어떤 나무는 더 깊이 뿌리를 내리는 것처럼 말이죠. 어쩌면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세상을 바꾸는 힘이 아니라, 세상의 파도를 유연하게 받아넘기는 '마음의 근육'일지도 모릅니다.
스스로의 욕망을 들여다보는 일도 그렇습니다. 인간이기에 우리는 무언가를 끊임없이 원하고 욕망합니다. 더 나은 삶, 더 많은 성취, 더 깊은 관계. 이 욕망은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소중한 연료입니다. 하지만 그 불꽃이 너무 커져 버리면 우리 자신을 태워버리는 화마가 되기도 합니다.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처럼 질주하는 욕망은 결국 파국이라는 절벽으로 우리를 이끌고 가죠.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질문을 더 던져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다루어야 할 것이 정말 욕망의 '크기'뿐일까요? 혹시 욕망의 '질'과 '방향'에 대해 잊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내 안의 불안과 결핍을 채우기 위해,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부풀려진 욕망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와 같습니다. 채우면 채울수록 더 큰 갈증과 스트레스를 불러올 뿐이죠. 이것이 바로 우리를 병들게 하는 '소모적인 욕망'입니다.
반면, 어제보다 조금 더 나은 내가 되고 싶다는 소망, 무언가를 배우고 세상에 작은 보탬이 되고 싶다는 열망은 어떨까요? 이런 욕망은 우리를 성장시키고 삶을 의미 있게 만듭니다. 스트레스마저도 성장의 발판으로 삼게 하는 건강한 에너지, 바로 '생산적인 욕망'입니다.
결국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지혜란, 무한한 욕망을 품고 질주하기 위한 에너지를 얻는 기술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오히려 내 안의 욕망들이 어디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지, 그 방향키를 바로잡아주는 '내면의 나침반'을 갖는 것에 가깝습니다.
오늘, 당신을 힘들게 하는 스트레스의 정체를 가만히 들여다보세요. 그리고 그 밑에 숨어있는 나의 욕망에게 다정하게 말을 걸어보는 건 어떨까요? "너는 어디서 왔니? 나를 어디로 데려가고 싶니?" 라고 말입니다.
내 안의 소음과 화해하고, 나의 욕망과 건강한 동반자가 될 때, 우리는 비로소 스트레스라는 파도 위를 유유히 항해하는 지혜를 얻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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