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마디 말이 천 냥 빚을 갚는다고 했다. 물론, 실제로 그랬다간 사기죄로 고소당할지도 모른다. 어쨌든 이 속담은 우리 입에서 나오는 ‘언어’라는 것의 무게를 실감케 한다. 우리는 평생에 걸쳐 말하는 법, 침묵하는 법, 그리고 말로써 관계를 맺는 법을 배운다.
그런데 오늘, 나는 그 입에 또 다른 무시무시한 힘이 숨어있었음을 깨달았다. 바로 ‘혀의 욕망’이다.
말이 이성(Logos)의 산물이라면, 맛은 본능(Eros)의 언어다. 짠맛, 단맛, 감칠맛, 매운맛… 혀끝의 미뢰들은 뇌의 가장 원초적인 부분을 두드리며 희열과 흥분, 혹은 깊은 위안을 선사한다. 문제는, 이 본능의 목소리가 너무나도 달콤하고 강력하다는 것이다.
요즘 우리는 혀의 욕망이 만들어낸 기이한 시대에 살고 있다. 화면 속 누군가는 산더미 같은 음식을 위장으로 밀어 넣고, 우리는 그것을 보며 대리 만족의 침을 삼킨다. 혀의 즐거움을 위해 내 몸의 다른 장기들은 혹사당한다. 내 위와 대장은 맛도 모른 채, 그저 쏟아져 내려오는 음식물을 처리하느라 비명을 지르는 하청업체 신세가 아닌가. 그러다 탈이 나면? ‘소화제’ 한 알로 대충 사태를 수습하고는, 다시 혀끝의 즐거움을 찾아 헤맨다. 이 얼마나 기만적인 평화인가.
문득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우리는 정말 ‘음식’이 고파서 먹방을 보는 걸까? 아니면 ‘관계’가, ‘위로’가, 텅 빈 마음을 채워줄 ‘무언가’가 고파서일까? 스트레스와 외로움을 한입 가득 매운 떡볶이와 치킨으로 욱여넣고 있는 것은 아닌지. 혀의 욕망은 어쩌면, 이 시대가 만들어낸 거대한 정서적 허기의 또 다른 이름일지 모른다.
결국 언젠가는 병원으로 향하게 될 것이다. 혀의 즐거움에 대한 청구서는 생각보다 비싸고, 반드시 내 몸으로 지불해야 한다.
요즘 들어 ‘중용(中庸)’이라는 말이 얼마나 지키기 어려운, 위대한 경지인지 절감한다. 그것은 단순히 먹고 싶은 것을 참는 소극적 절제가 아니다. 나의 몸과 마음을 존중하고, 순간의 쾌락이 아닌 지속 가능한 평온을 선택하는 지혜로운 행위다.
입은 한 인간의 에너지가 들어오고 나가는 관문이다. 무엇을 먹어 몸을 채울 것인가, 어떤 말을 뱉어 세상을 채울 것인가. 이 두 가지 질문에 균형을 잡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삶의 주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나의 입은 오늘, 무엇으로 채워져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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